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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STOK] 혼자가 되는 책상

2019년 6월 20일 업데이트됨



안 하는 게 점점 늘어난다. 예전에는 자주 했는데 지금은 안 하는 것들 말이다. 정신 차려보니 담배를 안 산지 한 달이 넘었고 술도 한 잔 이상은 안 마시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노래방도 안 가고, 친구 집에도 안 가고, 틴더도 안 하고, 인터뷰와 강연 요청도 거절하고, 고기도 안 먹고, 해산물도 우유도 버터도 계란도 안 먹고, 커피도 안 마시고, 야참도 참고, 거나한 유흥의 시간도 없다. 카톡도 전보다 덜 한다. 수신된 카톡에는 느리게 대답하거나 간단히 대답한다. 모두 그러려던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러고 있는 것들이다.


매일 하는 일은 운동과 독서와 원고 마감과 메일 답장이다. 애인과 부모 다음으로 자주 만나는 사람은 헬스 트레이너다. 월수금 아침마다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운동하며 몸을 갈고닦는다. 트레이너보다 자주 만나는 친구는 없다. 물론 친구들을 여전히 좋아한다. 두 달에 한 번쯤 만나는 게 제일 적당한 빈도로 느껴질 뿐이다. 친구 중 한 명인 양과 오랜만에 카톡을 주고받았다. 나의 단조롭고 별일 없는 일상을 전하며

말했다.“나는 갈수록 지루한 사람이 되고 있어.” 그러자 양이 대답했다.


“유랑하는 삶이구나, 친구야.”


맨날 집에만 있는데 웬 유량이냐고 묻자, 몸이 한 곳에 있어도 인생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법이라고 양은 말했다.


그건 꼭 페르난두 페소아가 했을 법한 말이었다. 멀리 가지 않고도 멀리 가는 법을 아는 자들이 있다. 여행 없이 여행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내가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웬만해선 어디 잘 가지 않는다는 것만 알겠다.


무언가를 안 함으로써 아낀 힘으로 일을 한다. 일을 하기 위해 인생의 다른 요소를 대폭 축소한 것 같기도 하다. 첫 번째로는 잘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이 노동이 아주 다양한 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커피와 담배와 만남과 유흥을 어느 정도 포기하지 않으면 내 신체는 이 노동량을 지탱하지 못한다. 몇 번의 크고 작은 병치레 이후 겸허한 마음으로 규칙적인 일과를 반복하게 되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제 시간에 밥을 먹고 혼자서 일을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헷갈리는 것들이 있다. 글을 누군가랑 같이 쓸 수 없다는 사실이 그렇다. 피아노 연탄곡을 치듯 키보드에 손 네 개를 올려서 함께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글쓰기는 참으로 혼자의 일이다. 남이 정한 출퇴근 시간이 없다는 것 또한 좋은 건지 아닌지 헷갈린다. 프리랜서 작가 생활의 달콤한 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할 일의 양이 변하지는 않으므로 어쨌든 스스로를 노동 모드로 엄격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비슷하다.


나에게 긴장감을 불어넣는 방식은 청소다. 프리랜서 선언은 누군가에게 고정적으로 고용되지 않고도 잘 지내보겠다는 다짐 같다. 스스로를 나약하게 두지 않기 위해 청소를 한다. 공간이 좋은 긴장감을 품도록 정돈하는 것이다. 쉼터였던 집을 일터 모드로 바꾸고 깨끗한 바닥 위에서 맨손체조를 한다. 이 모든 건 차분한 마음으로 책상에 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주어진 원고 마감을 펑크 내지 않을 미래의 나를 믿으며 일을 시작한다. 원고를 무탈히 완성한 경험이 축적될수록 매체 혹은 독자와의 약속을 지킬 나를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완벽하게 미덥지는 않다. 지금 쓰는 이 글의 마감도 이미 하루 늦었다. ‘일간 이슬아’의 원고 마감도 자정을 넘기곤 한다. 그럴 땐 미안함으로 쩔쩔매며 완성을 향해 간다. 가슴 떨리는 불안의 시간 역시 자업자득이다. 지각한 나를 스스로 실컷 혼내며 그리고 독자나 편집자님께 사과를 하며 완성본을 발송한다. 이런 날들의 반복이다. 절대 펑크 내지는 않지만 날마다 다른 컨디션으로 다른 결과물을 완성한다. 그 기복을 최대한 줄이며 안정적인 평타를 치는 것이 목표다. 평타라는 말 우습게 생각했는데 2년째 일간 연재를 해보니 날마다 평타라도 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른다.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선생님이나 별 관심 없던 라디오의 오래된 DJ의 꾸준함 같은 것을 존경하게 된다.


내 친구 양은 내가 사는 집을 두고 모델하우스 같다고 말했다. 불시에 방문해도 늘 정돈되어 있어서다. 사실은 이 집에 안 살고 진짜 생활은 딴 데서 하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우리 엄마 복희는 내 집을 두고 정 없다고 말했다. 간식거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복희네 집에는 언제나 간식거리가 있으며 금방이라도 메인 요리를 만들 수 있는 재료도 냉장고 안에 구비되어 있다. 눕기 좋은 소파와 텔레비전도 있다. 나는 쉴 때만 복희네 집에 간다. 일이 많을 때 그 집에 가면 큰일 난다. 무심코 늘어지기 전에 밥만 얻어먹고 황급히 내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내 집에 자리 잡은 대부분의 가구는 원목으로 만들어졌다. 퀸 사이즈의 침대 빼고는 죄다 중고로 싸게 구해서 우리 아빠 웅이의 트럭으로 옮겨온 것이거나 그가 직접 만들어준 가구들이다. 연한 갈색의 책장과 수납장과 선반은 몇 년을 써도 질리지 않으며 시간과 함께 근사하게 낡아간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근사한 건 서재의 놓인 기다란 소나무 책상이다. 웅이의 작품이다. 그는 내 집에서 가장 좋은 가구는 책상이어야 한다고 말하며 휴일에 공방에 가서 직접 나무를 손질하여 만들어왔다. 내 작은 서재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폭과 길이였다. 웅이는 누구보다도 바쁘니까 바니쉬는 내가 직접 칠했다. 네 번이나 칠했더니 맨질맨질해졌다. 책상에 빨간 국물 같은 걸 흘려도 행주로 훔치면 자국이 안 남는다.


이 책상에서 많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잘한 일 말고 못한 일도 많다. 쓰다가 막힌 글도 많다. 답답해서 멍하니 책상을 볼 때면 웅이를 떠올린다. 아무도 글을 대신 써주지는 못하지만 이 어려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웅이가 내 일을 얼마나 응원하고 존중하는지를 튼튼한 책상에서 본다.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그냥 알아진다. 책상은 나에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 일할 용기를 준다. 약속을 거절할 용기와 미움 받을 용기와 빈 화면을 마주할 용기와 남에게 자질구레한 하소연하지 않을 용기를 말이다.


나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과 적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의지하며 나는 자주 혼자가 된다. 메이 사튼의 책 『혼자 산다는 것』에는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혼자 여기서, 마침내 다시 나의 ‘진짜’ 삶을 시작하려고 하고 있다. 그것이 이상한 점이다.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혹은 무엇이 일어난 것인지 캐보고 알아보는 혼자만의 시간이 없는 한,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 열렬한 사랑조차도 내 진짜 삶은 아니라는 것이다. 메이 사튼과 비슷한 모습으로 늙어간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소중한 사랑과 우정을 진짜 내 삶으로 만들려면 꼭 혼자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건 이상하고도 가혹하고도 재미있는 진리다. 더 제대로 연결되기 위해 차단하는 연결도 있는 것이다. 나는 많은 것을 안 하며 점점 지루한 사람이 되어가는 동시에 소나무 책상에 기대어 어디로든 가는 유랑을 연습하며 지낸다.


격월간 <VOSTOK> 2019년 5월


글 : 이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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