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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t 서평] 삼촌과 페소아



나의 소설 쓰기는 인물 작명에서부터 난관에 부딪친다. 실제로 보거나 듣거나 만지지 않은 누군가의 이름을 주어로 쓰는 건 두렵고 어색하다. 그런 주어로 문장을 시작하면 가슴이 조마조마하여 마침표를 잘 못 찍겠다. 독자는 바로 알아챌 것이다. 내가 이 인물을 얼마나 모르는지를. 


들키지 않을 만큼 쉬운 거짓말만을 쓰다가 지금의 내가 되었다. 


이런 나도 나쁘지 않지만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굉장한 작가들만이 건너는 강 같은 게 있다면 나는 이제 겨우 종아리를 물에 담그고 저 멀리 깊은 곳을 바라보는 중일 테다. 잘하면 물을 가르고 힘차게 뻗어나갈 듯도 한데 어째서 인물에 이름을 주는 것조차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이 점에서는 유년기의 내가 지금의 나보다 유능하다. 초등학교 입학 이전에는 부끄러움이나 염려 없이 가상의 인물을 상상하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주로 레고 블록의 캐릭터들에게 불어넣는 이야기였는데 이름을 주는 순간 그에게 어떤 인생을 주고 싶은지도 떠올랐다. 이름이 주는 예감이 있었다. 그걸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고 이야기를 짰다. 꿈꾸는 삶의 서사 뿐 아니라 절대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을 겪게 만들기도 했다. 상상 속에서라면 한껏 끔찍해볼 자유가 있으니까.


레고로 만든 건물과 인물을 두고 내키는 대로 공상에 빠진 어린이인 나는 길고 긴 혼잣말을 했다. 직접 창조해낸 캐릭터여도 다 알지는 못했다. 인물에게 추가할 새로운 정보가 떠오르면 뒤늦게 주렁주렁 덧붙였는데 이 때의 태도는 전지적 작가라기보다 목격자에 가까웠다. 마치 나도 이제야 봤다는 듯이,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제야 눈치를 챘다는 듯이 증언할 뿐이었다. 증언의 말투는 이러했다.


“키키는 다리가 아픈지 자꾸 절뚝거렸대. 어디선가 다친 것 같았대. 수상했지만 무슨 사고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대. 한참 걷다가 결국 너무 아파서 참지 못하고 기절을 했대.”

 

수많은 어린이들처럼 나 역시 기절에 매혹되었다. 한 번이라도 기절해보는 게 소원이었다. 당시 보던 만화와 영화와 드라마의 모든 주인공들은 기절을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서 나는 여러 번의 기절과 입원과 퇴원과 죽음과 부활을 겪었다.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유년의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등 뒤에서 삼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지배가 혼자서 잘도 노네.”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삼촌이었다. 나는 놀라서 혼잣말을 멈췄다. 그는 이십 대 후반이었고 입술이 두꺼웠고 징그러운 가슴털이 많았다. 물론 우리 집은 열한 식구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었으니 언제 어디서 그가 나타난대도 놀라울 건 없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작은 아빠와 삼촌은 나를 지지배라고 호명하곤 했다. 갑자기 수치심이 나를 뒤덮었다. 방금 전까지 혼자서 잘도 노는 애였다는 게, 뒤에서 누가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몰입했다는 게 창피했다. 몰입이란 오직 깨질 때에만 인식할 수 있었다. 하는 중엔 알아차릴 수조차 없는 게 몰입이었다. 삼촌이 놀리는 건 바로 그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것들 아닌가. 순진함, 진지함, 눈치 없음, 세상 물정 모름, 분위기 파악 못함, 친구 없음, 귀여움, 어림... 어른들이 이미 극복해서 시시해할 수 있게 된 것들 말이다. 그는 뒷짐을 지고 걸으며 시니컬한 말들을 툭툭 던지는 사람이었다. 

 

“지지배가 거울을 오래도 보네. 다마네기처럼 생겨가지고.”

“지지배가 눈 감고 노래를 부르네. 지가 가수인 줄 아나보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우스워하는 삼촌이 너무 미워서 나도 그에게 창피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냉소를 몰랐기 때문이다. 냉소 없이는 상대의 우스운 점을 찾기가 어려웠다. 삼십 년 가까이 냉소를 쌓아온 삼촌이 훨씬 유리했다. 그에게 빈틈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몇 가지 놀이를 그만뒀다. 혼잣말 하며 레고 만들기,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인생을 상상하기, 거울 속 나에게 말 걸기, 눈 감고 노래 부르기, 마음대로 작사 작곡하기 등을 관두고 어떤 냉소를 모방했다. 냉소의 말투는 이러했다.

 

“근데? 어쩌라고. 상관 말라고.”

 

삼촌에게 그 말을 남발하며 초등학생이 되었다. 냉소적인 자는 깊은 몰입에 빠질래야 빠질 수가 없었다. 의심과 검열이 가만두지 않으니까. 삼촌이 보고 있지 않을 때조차 전처럼 내 상상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상상에 빠진 어린이의 모습을 나 역시 업신여기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던 시절은 일찍이 막이 내렸다.

 

20년 뒤 우연히 페르난두 페소아의 책들을 읽었다. 

 

한 사람이 다 쓴 거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글들이었다. 너무 여러 작가가 페소아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페소아와는 다른 이름을 가진 그 작가들은 각자 견고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페소아와 페소아들이자 페소아의 이명들이었다. 

 

나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이 경지에 이르면 이렇게 엄청난 작가가 되는구나! 감탄과 낭패감이 함께 찾아왔다. 유년의 상상 극장으로부터 너무 멀리 온 것 같아서다. 

 

다양한 자신을 수많은 이름으로 해방시킨 페소아에 비해 나는 얼마나 ‘단 하나의 나’인가. 자기 이름이 주어인 문장만 쉽게 완성하는 글쓰기란 얼마나 답답한가. 나는 삼촌의 멱살을 살짝 붙잡고 싶었다. 가상의 인물 이름 하나 짓는 데에도 이렇게나 애를 먹는 사람이 된 건 삼촌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삼촌 같은 사람들, 혹은 내 안의 삼촌 탓일 수도 있다. 

 

애석하게도 당시 삼촌은 지금의 나만큼이나 젊었다. 지금의 삼촌은 두 딸의 아빠가 되었으니 작은 아빠라고 불러야 맞는데 여전히 삼촌이라고 부르게 된다. 나는 당부했다. “삼촌, 이제는 딸들한테 지지배라고 하지 마.” 삼촌이 대답을 했던가. 부루퉁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이기만 했던가. 삼촌의 딸들이자 어린 사촌 자매들에게 나는 고급 색연필과 동화책 따위를 선물한다. 부디 아무도 그들의 상상을 함부로 놀리지 않기를 염원하며. 

 

하지만 끝내 자신만이 자기 상상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페소아가 그랬듯 말이다. 짓궂은 어른과 냉소적인 동료와 배배 꼬인 독자가 팔짱을 낀 채 그를 우스워 해도 주눅들지 않는 몰입과 상상을 생각한다. 유년의 나는 ‘모든 것이 되어 모든 것을 느끼고 싶은’ 마음이란 게 있었다. 그래서 아주 긴 혼잣말을 이어갈 수도 있었다. 페소아 책 중 하나인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이라는 제목처럼, 나는 이야기를 꾸며내는 방식으로 탁월하게 혼자였다. 꾸며낼수록 가까워지는 진실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다. 부끄러운 진실에 접근하도록 돕는 거짓을 말이다.

 

앞으로 나는 내 안의 삼촌 바로 옆에 페소아를 앉혀두고 싶다. 삼촌의 냉소와 검열이 나를 가로막을 때 페소아는 말할 것이다. 상상의 붓질이 너의 뇌를 쓰다듬게 하라고. 그럼 드디어 즐거운 용기로 이름을 지어줄 수도 있겠다. 내 소설 속 누군가에게. 내 안의 작가들에게. 그 이름들로 나도 조금씩 복수가 되어갈 수도 있겠다.



글 : 이슬아


2019년 7월 <Axt> 25호



인용한 책 :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ㅣ페르난두 페소아ㅣ김한민 옮김ㅣ2018ㅣ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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