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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출판사





얼마 전 나는 한 출판사의 대표가 되었는데, 그 과정은 몹시 단출했다. 구청 가서 출판사 신고하고, 은행 가서 사업자 통장 개설하고, 세무서 가서 사업자 등록 하니까 끝이었다. 출판사의 구성원이라곤 나뿐이었다. 자동으로 대표가 되었다.


출판사를 만든 이유는 대형 서점과 거래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두 권의 책을 썼는데 문학동네와 함께 만든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는 집필 이후에 크게 할 일이 없었다. 책을 독자에게 전하기까지의 모든 업무를 출판사의 전문가분들이 맡아주셨기 때문이다. 반면 독립 출판한 책 『일간 이슬아 수필집』 에 관한 모든 일은 직접 해야 했다. 제작, 편집, 홍보, 영업, 유통, 포장, 배송을 비롯한 전 과정을 알음알음으로 배웠다. 출판사 타이틀 없이 개인적으로 일하며 전국 100여 개의 독립 서점과 거래했다.


그런데도 많은 이가 여전히 내 책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형 서점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과 같은 커다란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했을 때 책이 나오지 않으면 구매를 포기하는 독자가 많았다. 독립 서점을 찾는 이들은 적극적인 독자에 속했다. 나도 그런 독자 중 하나지만 책을 지속적으로 판매하려면 적극적일 여유가 없는 독자도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대형 서점에도 책을 납품해야 했다. 그래서 출판사를 등록하고 내 책에 ISBN 바코드를 삽입했다.


이름은 ‘헤엄 출판사’로 정했다. 수영 강사이자 산업 잠수사였던 아빠로부터 헤엄을 배운 기억을 떠올리며 지었다. 넓고 아름답고 험한 바다와 힘을 뺀 채로 수면 위에 둥둥 떠 있는 사람들을 마음속에 그렸다. 조금 먼 미래도 생각했다. 당장은 내 책을 쓰고 팔기에 급급하지만 나중엔 작가로서의 훈련뿐 아니라 편집자로서의 훈련도 병행하고 싶었다. 나 아닌 다른 저자의 빛나는 글을 모셔 올 수 있도록 말이다. 애인이 아름다운 로고를 그려주었고 그 로고가 새겨진 명함을 팠다.


이렇게 헤엄 출판사가 설립되었으나 달라진 것은 서류뿐이었다. 사무실 같은 건 없었다. 내 집의 서재가 곧 물류센터였다. 10㎡(세 평)짜리 물류센터에 나의 엄마를 정직원으로 고용했다. 월급을 매달 주고 일을 맡겼다. 서점들로부터 주문이 들어오면 그에 맞게 나의 책을 안전하게 포장하고 발송하는 업무다. 시간 대비 고수익 임금이고 맘 편한 노동 환경이므로 엄마는 점심때쯤 흔쾌히 내 집에 출근한다. 나는 엄마를 위한 노동요로 이문세의 노래를 튼다. 물류센터에서 깔끔하게 포장된 책은 유통센터로 보내진다. 유통센터란 내 아빠의 트럭을 말한다. 가까운 서점은 그 차로 배송하고 지방 서점에는 택배로 보낸다. 아빠는 일용직으로 고용했다. 일거리가 매일 있지 않은 데다가 정직원을 두 명이나 고용할 형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엄마의 직함은 물류센터장이고 아빠의 직함은 유통센터장이다.


부모이자 직원에게 포장 및 배송 업무를 맡긴 뒤 나는 그 외 모든 업무를 처리한다. 이른 아침부터 걸려오는 서점 발주 통화와 재고 관리와 장부 정리와 세금 처리 등으로 나의 하루는 일찍 시작되고 늦게 끝난다. 홍보를 위한 잡무와 행사와 각종 원고 마감도 병행한다. 내 연재와 출판사를 홍보하기 위한 홈페이지도 제작했다. 전문가에게 의뢰하려다가 비싸서 직접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그럴싸하다.


하루는 책 몇백 권을 실은 차의 조수석에 탑승했다. 경기 파주의 인쇄소로 가서 새로운 중쇄의 감리를 본 뒤, 처음 거래하는 대형 서점의 본사로 가서 계약서를 쓰고, 또 다른 대형 서점의 물류센터에 들러 책을 납품하는 일을 연이어 했다. 도서 유통의 핵심 단계에 해당하는 장소를 죄다 목격한 날이었다. 잉크 냄새와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꽉 찬 인쇄소에서는 기장님께 큰 목소리로 요청 사항을 말씀드렸다. 대형 서점 본사에서는 배송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배본사를 두지 않을 경우 계약이 어렵다는 조건을 들었다. 나는 헤엄 출판사의 틀림없는 배송 시스템을 최대한 어필하며 배본사 없이 계약을 설득했다. 수만 부의 책이 쌓인 물류센터에서는 책 더미를 나르는 지게차들이 빠르게 공장을 누비고 있었다. 하마터면 치일 뻔했다. 하루 만에 책을 배송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사람이 서둘러야 했다. 이제 나도 그 과정에 속했다. 그렇지만 책이 왜 그렇게까지 빨리 배송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었다. 책뿐만 아니라 많은 물건이 새벽에도 쉬지 않고 옮겨지는데 그 시스템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이 속도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게 이상했다.


일몰의 색깔로 뒤덮인 자유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꾸벅꾸벅 졸았다. 출판사 일을 해보지 않았다면 겨우 집필만 알았을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제작되어 독자의 손에 쥐어지기까지는 집필 이후에도 아주 많은 과정이 필요한데 말이다. 내가 아는 모든 출판 노동자의 하루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출판 시장이라는 커다란 바다에서 어떤 식으로든 계속하는 사람들을. 이제 막 물에 발을 담근 나는 그들의 행보를 바라보며 나의 헤엄을 배운다.


월간 <채널예스> 2019년 3월호


글 : 이슬아 일러스트 : 손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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