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는 어떻게 확장될 것인가
계간 [자음과모음] 2019년 봄호
개인주의자의 생계유지
나는 웬만하면 혼자 일하고 싶다. 혼자 하든 여럿이 하든 돈벌이란 힘든 일이지만 대개의 경우 혼자 힘든 쪽이 더 깔끔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함께 쉬고 싶을 뿐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 부모와는 아침을 같이 먹고 싶고 애인이랑은 넷플릭스를 시청하고 싶고 친구들과는 마음 놓고 수다를 떨고 싶지, 같이 돈을 벌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경제적 운명 공동체는 여러 위험과 부담을 공유하게 된다. 조직의 시너지도 있지만 조직의 모멸감과 끔찍함도 있다. 너무 싫은 사람과 부대끼며 일해야 하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함께 일하다 서로를 미워하는 상황도 피하고 싶다. 물론 미웠던 사람이 다시 좋아지는 회복의 기회가 업무 중에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던 사람을 어쩌면 더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팍팍한 세상에서 그런 아름다운 동료애를 일구기란 결코 쉽지 않다. 다정한 사람들끼리 만나도 어려운 일이다.
프리랜서로 지내온 5년 동안 주로 혼자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이즈의 일을 벌여왔다. 벌이가 충분치 않을 때에는 여럿이 함께 하는 일에도 참여했지만 주업은 뭐니뭐니해도 혼자 하는 연재 노동이었다. 혹시 사람들 사이에서 여태껏 내 인성이 조금이라도 좋게 평가되었다면 아마 혼자 일해온 덕분일 것이다. 협업을 자주 했다면 깍쟁이로 소문났을 게 분명하다. 사실 식당에서도 꼭 개인당 온전히 한 그릇이 보장되는 메뉴를 선호한다. 수저와 침이 한 그릇에 섞이는 것이 싫고 내가 얼마만큼 먹었는지 정확히 측정되지 않는 것도 싫은 것이다. 나는 양이 적은데 여럿이 한 음식을 나눠먹으면 꼭 과식을 하게 된다. 내 양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까 봐 형제 많은 집의 자식처럼 조급하게 식탐을 부린다. 그럼 속이 더부룩해지고 기분이 나빠진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나도 떡볶이집이나 샤브샤브집이나 고기집은 잘 가지 않는다. 피치 못하게 커다란 음식을 함께 먹었을 경우 계산은 백 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n분의 1로 나눠 처리한다.
또한 메일함에 쌓인 여러 제안들 중 ‘협업’이나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으면 의심부터 하고 본다. 애매모호한 그 단어들이 멋진 결과로 구현될 확률은 대체로 낮다. 제안서에 돈 얘기가 적혀 있지 않을 경우 더욱 그렇다. 업무를 어떻게 분배하여 수익을 어떻게 나눌지 이야기하지 않는 협업 제안은 몹시 사랑하는 작업자가 아닌 이상 응하지 않는다. 원고료나 강연료 얘기를 쏙 빼놓은 제안들은 말할 것도 없다. 노동료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진지하게 고려해보기가 어렵다고 정중하게 거절한다. 몇 번의 재능기부와 열정페이를 반복하다 심신이 지친 이후 나는 정확한 원고료가 명시된 청탁만 수락하는 연재 노동자가 되었다.
애초에 <일간 이슬아>는 그런 깍쟁이에게 제격인 프로젝트였다. 오직 나라는 일꾼만 잘 통제하고 관리하면 큰 문제없이 굴러갔다. 성공도 실패도 자업자득이고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아무와도 수익을 나눌 필요가 없었다. 매체에서 내 글을 실어주지 않아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상사나 동료와의 의논 없이 매일 쓸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상환해야 할 학자금대출이 태산 같아서 부업으로 뭐든 해야 하는 때였다.
동료작가 잇선 씨에게 초기 아이디어를 얻은 뒤, 포스터를 만들어서 SNS계정을 통해 프로젝트를 홍보하고 구독자를 모집하고 이메일로 글을 연재했다. 날마다 쓰고 싶은 수필을 썼다. 픽션과 논픽션 사이의 이야기들이었다. 잘 쓴 날도 있었고 못 쓴 날도 있었다. 잘 쓰나 못 쓰나 쓰는 동안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대출금을 갚기 위한 돈벌이기도 했고 독자에게 글을 직거래하는 실험이기도 했다.
일간 연재의 성과와 과대평가
실험 결과 <일간 이슬아>는 예상보다 빠르게 유명해졌다. 구독자도 많았고 이 프로젝트를 둘러싼 입소문과 평가들도 무성했다. 주요 언론사들의 취재 기사와 수많은 독자들의 리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웹에 올라왔다. 연재 글은 여러 독자들의 SNS 계정에서 1000건이 넘게 공유되었다. ‘월간 이슬아’나 ‘인간 이슬아’라고 잘못 소개되는 경우도 잦았으나 어쨌거나 커다란 관심을 일 년 내내 받았다. 그런 관심이 고맙고 벅차고 아리송했다.
어떤 네티즌들은 이슬아가 등단 제도를 향해 패기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혹은 문학계의 새로운 등용문을 창조하며 출판계에 한 방을 먹였다고도 말했다. 과연 그런가? 아니었다. 출판계는 내게 잘못한 게 없으므로 한 방을 먹일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능력이 된다면 등단을 하고 싶었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한국문학 작품의 대다수가 등단한 작가들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평론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문예지를 챙겨보며 배우는 독서가 나는 즐거웠다. 좋아하는 작가나 평론가의 새 글은 문예지 지면에 가장 먼저 소개될 때가 많았으므로 문학 시장에서만큼은 기꺼이 빠르고 적극적인 소비자가 되었다.
두 번째 이유는 등단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고급 인정의 느낌 때문이었다. 그것은 유명한 대학에 가는 것과도 비슷해 보였다. 등단 후에는 나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 멋진 등용문을 이미 통과했으니 말이다. 등단 없이 작가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영 모르기도 했다.
한동안은 등단이 하고 싶어서 여러 출판사들을 돌며 소설 창작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수업은 재미있고 어려웠다. 등단에 대한 희망과 절망과 야망 등으로 강의실은 후끈하고도 서늘하였다. 내가 쓰는 소설들은 별로였다. 오래전에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에서 단편소설로 상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건 진짜 등단처럼 이야기되지 않았다. 손바닥문학상 수상자가 주요 문예지로부터 청탁을 받는 경우는 잘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언젠가 훌륭한 데뷔작을 집필하여 꼭 커다란 문학상으로 등단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못 했다. 앞으로도 못 할 것 같다. 안 한 게 아니고 못 한 것이니까 나는 등단 제도에 한 방을 먹인 적이 없다. 그저 열심히 생계를 궁리하던 중에 『일간 이슬아』가 얻어걸렸을 따름이다. 글쓰기 소상공인이 되자는 다짐 정도가 원대한 희망이라면 희망이었다. 월수입이 몇 만원이라도 늘어야 하는데 언제까지 매체의 청탁만을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한편 언제부턴가는 내 글이 꼭 소설의 모양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혹은 소설이더라도 문학상에 투고할 만한 분량이나 완성도가 아니어도 좋다고 믿게 되었다. <일간 이슬아> 연재를 통해 나에게 맞는 장르와 호흡을 훈련하기로 했다.
편의상 수필이라고 이름 붙였으나, <일간 이슬아>의 연재 글들은 대부분 가공된 이야기였다. 어떻게든 왜곡되고 변형되고 편집되는 건 모든 글의 숙명이다. 내 자아의 조각은 현실에도 있고 SNS에도 있고 일간 연재에도 있다. 그 모든 모습을 단순하게 연결지어 이해받는 건 난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는 내 손을 떠난 문제이기도 해서 어쩔 수는 없었다.
혼자의 효율과 한계
펑크 내지 않고 매일 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건 프로젝트 운영과 관리였다. 집필은 물론, 홍보와 유통과 회계와 구독자 응대와 피드백까지 혼자 죄다 처리하니 출퇴근하는 회사원 못지않게 바빠졌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고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었다. 어려웠지만 효율적이기도 했다. 혼자라도 부지런히 움직이기만 하면 모두 감당 가능했다.
하지만 구독자의 피드백(내 글에 대한 호평, 혹평, 질문, 불만, 비난, 제안 등)에 응답할 양이 너무 늘어나자 중간 관리자 고용을 고려하게 되었다. 피드백의 양도 양이지만, 무분별하고 폭력적이기도 한 모든 반응에 창작자 본인이 정면으로 맞서는 게 정신적으로 피폐해서였다. 현명한 중간 관리자를 둔다면 내가 꼭 결정하고 대답해야 할 업무만을 필터링해서 보여줄지도 몰랐다.
그러나 역시 혼자 하기로 했다. 나만큼 성실하고 빠르고 친절하게 응대 업무를 할 사람이 없을 것 같았다. 일간 연재 운영 몇 달 만에 사장님 마인드가 된 것이다. 결국 1인 사업 유지를 계속 해나갔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바쳐서 일했다. 완성도 있는 수필 한 편을 매일 쓰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그 외의 업무량도 만만찮았다. 선불로 구독료를 받았으니 어떻게든 해내야했다. <일간 이슬아>는 수많은 사람들과 돈을 걸고 한 약속 위에 창간된 일간지였다.
고민하다 ‘일간 이슬아 친구 코너’를 개설했다. 말 그대로 이슬아의 친구 작가들이 쓴 글을 소개하는 코너였다. 이 코너를 도입한 첫 번째 이유는 프로젝트의 지속가능성 때문이었다. 대표이자 필자이자 관리자인 내가 너무 지치면 절대로 계속할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 편, 내 글 대신 친구 글을 연재한다면 난 적어도 하루는 쉴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친구들의 글을 소개하고 싶어서였다. 나처럼 이기적인 깍쟁이도 결코 혼자 자라오지 않았다. 읽고 쓰는 체력을 함께 기른 동료들이랑 같이 자랐다. 아무도 안 시켰는데 뭔가를 쓰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고 그들이 모이면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친구들은 나에게 독자이자 합평자이자 라이벌이자 스승이 되곤 했다. 나도 그들에게 마찬가지였을 테다. 내 글이 도달하지 못하는 수많은 시공간을 조명하는 친구들의 재미난 글을 연재에 포함한다면 <일간 이슬아>의 콘텐츠는 훨씬 더 풍성해질 게 분명했다.
친구 코너 개설 공지 메일을 보내자 구독자들로부터 항변의 답장 수십 통이 날아왔다. 나에 대한 호감이나 호기심으로 구독료를 낸 것이며, 잘 알지 못하는 아마추어 친구들의 글은 궁금하지도 않고 굳이 읽고 싶지도 않다는 내용이었다. 반면 이슬아가 소개할 다른 작가들의 글도 기대되고 궁금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어느 쪽 반응에도 크게 개의치 않고 친구 코너를 진행했다. 같은 그릇에 담긴 음식을 나눠먹는 것은 싫지만 친구들을 안 사랑하는 건 아니었다. 나만 잘 되면 재미없으니까 친구들도 같이 잘 될 기회들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싶었다. 친구들의 글이 좋다는 걸 결국 많은 이들이 알게 되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이때 『일간 이슬아』는 얼떨결에 플랫폼으로 도약했다. 이전까지는 개인 창작 지면이었으나 친구 코너 개설 이후로는 동시대 작가 생태계의 일부를 공유하는 장이 되었다. 필자로서의 훈련뿐 아니라 편집자로서의 훈련도 겸행하는 셈이었다. 편집자 훈련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이렇게 다짐했다.
‘작가들에게 돈을 잘 주자!’
좋은 글을 쓰거나 알아보는 일은 자신 없기도 했지만, 돈 주는 일에서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우선 내가 돈을 못 받으면 아주 분노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료작가들에게 청탁서를 보낼 때마다 정확한 원고료와 지급일을 명시했다. 마감일은 알리면서 원고료 지급일을 알리지 않는 것은 이상했다. 친구 코너에 글을 기고하는 작가들에게 매당 1만 원 이상의 원고료를 책정했으며 완성된 원고를 받은 당일에 꼭 돈을 송금했다. 작가들은 주로 개인으로 존재하지만 가끔은 서로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집단이기도 했다.
어떤 친구의 글은 내 글보다도 훨씬 반응이 좋았다. 친구도 뿌듯했고 그 글을 모셔온 나도 뿌듯했다. 매주 남의 글 중 어떤 것을 고를지, 어떤 언어들로 그 글을 소개할지도 열심히 생각했다. 나를 믿고 선불로 구독료를 내준 독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플랫폼으로서의 <일간 이슬아>
<일간 이슬아>는 여느 뉴스레터와는 달리 수신자 개봉률이 100%에 임박하는 메일링 서비스다. 한 달에 만 원씩 돈을 내고 구독하기 때문일 테다. 하루에 한 편 완독하기 딱 좋은 분량을 전송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2018년 봄부터 가을까지 연재를 진행했고 쌓인 글을 100편 가까이 묶어 『일간 이슬아 수필집』으로 출간했다. 직접 제작하고 홍보하고 유통하고 배달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3개월 사이 7000부가 팔렸다.
2019년 초, 나는 <일간 이슬아> 시즌 2를 준비하고 있다. 봄부터 다시 재개될 시즌 2 연재는 어떻게 더 좋아질 수 있을지 고민한다.
시즌 1을 통해 내가 매일 쓸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으로 믿게 되었다. 윗몸 일으키기 횟수를 늘리듯 꾸준히 훈련하면 쓰는 근육도 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도 뜨겁게 달궈졌다. 매일 좋은 글이 완성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좋은 글을 쓸 확률이 높아지기는 했다.
<일간 이슬아>는 이슬아라는 개인의 역량에 거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 내 이름이 제목인 프로젝트라서 모든 책임이 나의 몫이다.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개인주의적인 기질에 적합한 일이긴 하다. 나는 나를 제일 아낀다. 하지만 내가 나에게 배우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느낌이 든다.
시즌 2에서는 더 다양한 창작자들을 나의 지면에 모실 것이다. 어떤 작가에게 돈을 내고 작품을 받아올지 나는 더 부지런히 탐색하고 결정해야 하겠다. 누구를 모셔오든 나의 필터로 통과시키는 것일 테니까 정말 좋은 필터가 되도록 애쓰겠다. 좋은 필터를 장착한 플랫폼으로 성장하기를 꿈꾼다. 내가 구독하는 문예지들의 훌륭한 점들을 닮아가고 싶다. 내가 읽는 작가들의 훌륭한 점들을 닮아가고 싶다. 여러 장르를 시도해보며 내가 잘 쓸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