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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와 출판사




스무 살 때 나는 엄마가 차린 구제 옷가게의 일을 가끔씩 도왔다. 사장인 엄마가 바쁘거나 아파서 출근이 늦어질 때 대신 가게를 보는 일이었다. 손님들은 나를 좋아했지만 엄마를 향한 애정과 신뢰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모두 그녀가 출근하기만을 기다리며 옷을 골랐다. 그녀의 덕과 품으로 굴러가는 가게였기 때문이다. 작고 동그란 엄마 어깨 너머로 가게가 바삐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시절이 내게 있다. 엄마가 몹시 많은 이들의 말에 응답하던 시절이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 나는 20대 후반이 되고 엄마는 50대 중반이 되었다. 그녀가 몸과 마음과 시간과 영혼을 바쳐 운영하던 구제 옷가게는 이제 없다. 대신 내가 출판사를 차렸다. 나는 원고 집필과 출판사 운영을 병행하느라 매우 분주해졌다. 일손이 절실했다. 마침 이웃집에 엄마가 있었다. 그녀는 생활비에 보탬이 되고자 동네 기사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고민하는 참이었다. 엄마처럼 다채로운 노동의 경험치를 쌓아온 유능한 일꾼이 겨우 최저 시급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아까웠다. 나는 엄마에게 소문만 무성하고 성의는 없는 그 기사 식당에 가지 말고 내 출판사에서 일할 것을 권유했다. 최저 시급보다는 나은 월급과 탄력 근무제와 평안한 노동 조건을 약속했다. 세 자릿수를 겨우 넘긴 월급을 엄마 통장에 선불로 입금함으로써 우리는 같은 출판사의 노동자들이 되었다.


임시로 그녀를 ‘장 팀장님’이라고 호명하겠다. 장 팀장님의 첫 번째 업무는 택배 포장이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네 달 사이 1만 부가 팔렸는데 그중 택배로 배송된 7,000부가량은 모두 그녀가 포장했다. 주문이 들어온 권수에 맞게 책을 챙기고, ‘뽁뽁이’로 싸서 박스에 넣고, 남는 공간에 박스 조각을 채워서 책이 흔들리지 않게 하고, 배송지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서 송장을 접수하고, 택배 기사님이 수거하실 수 있도록 포장 완료된 책을 1층에 내려다 놓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영업일 기준 하루 평균 90권가량을 포장한 셈이다. 배본사 없이 자체 인력만으로 1만 부 배송을 소화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실로 장 팀장님이 해낸 일이다.

가끔 나의 아빠가 장 팀장님을 도우러 나타나기도 했다. 그도 장 팀장님 못지않게 유능한 일꾼인데 일하는 스타일이 매우 판이하다. 그래서인지 일하다 자주 싸운다. 나는 원고 마감과 메일 답장과 장부 정리를 하던 중 두 사람의 언쟁 소리를 듣고 정신이 산만해진다. 모든 게 서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을 차릴 돈이 없어서 나의 서재는 작업실이자 사무실이자 택배 포장소가 되었다. 바로 옆에서 티격태격하는 부모에게 나는 대표의 말투로 주의를 준다.

“소란스럽네요.”

그러자 장 팀장님은 자신의 남편을 가리키며 내게 말한다.

“저 아저씨랑 같이 일하기 싫어.”

그럼 나는 두 사람에게 각각 다른 업무를 배정해준다. 따로 일하는 동안 둘은 싸우지 않는다. 가족 기업이란 무엇인가….


1만 부를 넘기고부터는 큰맘 먹고 배본사에 배송 업무를 넘겼다. 장 팀장님에게 배송보다 더 중요한 업무를 맡기기 위해서다. 그것은 바로 회계다. 원래는 나 혼자서만 관리하던 내역이지만 나처럼 여러 일을 어수선하게 병행하는 사람이 회계를 쭉 책임진다면 장부는 결국 엉망이 될 게 뻔했다. 그러기 전에 장 팀장님에게 인수인계를 진행했다. 그녀와 나란히 앉아 4개월간의 매출과 매입 내역을 처음부터 다시 정리했다. 제작비와 마진과 수금 내역도 재검토하고 월별 통계도 냈다. 장 팀장님은 소싯적에 경리 일도 했고 자신의 옷가게를 7년이나 굴려봐서 그런지 나보다 나았다.


하지만 그녀는 엑셀 프로그램을 쓸 줄 몰랐다. 몇 주간 그녀에게 엑셀과 구글 스프레드시트의 사용법을 알려주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장 팀장님은 매번 기상천외한 버튼을 누름으로써 자료를 삭제하거나 뒤섞어놨다. 아찔한 일이었다. 디지털 리터러시를 체화하지 않은 그녀가 컴퓨터로 어떤 실수를 저지르는지 볼 때마다 간담이 서늘했다. 어쩌면 내 맥북을 무심코 쟁반이나 도마로 쓸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우리는 장부의 전산화를 포기했다. 장 팀장님은 문구점에 가서 ‘金錢出納簿(금전출납부)’라고 적힌 구식 노트를 사 왔다. 거기에 터프한 손 글씨로 장부를 적어나갔다. 그녀에게 맞는 도구는 그것이었다. 그리하여 헤엄 출판사의 최종 장부는 모두 종이에 기록되어 있다. 일단은 장 팀장님이 일하는 방식을 따를 수밖에. 모르는 게 있으면 검색 대신 전화부터 걸고, 망원시장에서 과일 값 깎듯 종이 회사 사장님에게 에누리하며 종이 단가를 깎고, 거래처 직원과 금세 친해져서 고급 정보를 입수해내는 장 팀장님을, 실은 신뢰하는 것인가. 출판 일이 처음인 우리는 매일같이 실수하고 허둥지둥 수습하지만 어쩐지 이 사업 역시 그녀의 덕과 품속에서 굴러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부디 우리의 일이 계속되면 좋겠다.


월간 <채널예스> 2019년 4월호


글 : 이슬아

그림 : 손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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