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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씩 받고 글 쓰는 날들


일러스트 손은경 @thanksforbeingu


글에 관한 값어치를 어떻게 매기면 좋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음식 장사를 한다면 재료값에 나의 인건비를 적절히 더해서 팔 것 같은데, 글을 쓰고 나서는 얼마를 받아야 적절한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글 한 편에 내가 들인 시간과 몸과 마음은 어떤 기준으로 셈하여 돈으로 환산하면 좋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몰라도 공짜로 기고할 수는 없었다. 돈을 받지 않고는 오랫동안 지속할 힘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잘하고 싶은 일과 돈벌이가 최대한 따로 놀지 않는 일상을 언젠가는 살아보고 싶었다. 내 창작물에 대한 돈을 받는 것부터 성공해야 했다. 부끄럽고 민망해도 원고료를 확인하고 챙겼다. 원고 청탁서에 적혀 있는 고료의 평균은 얼마쯤인가. 신문이나 잡지나 인터넷 매체에서 제안하길 200자 원고지 기준 1매당 만 원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만약 기고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한 달에 최소 10개의 청탁을 받아야 했는데 나에게 그렇게 많은 청탁이 올 리가 없었다. 한 달에 한 번 오는 청탁도 금쪽같이 반가웠다. 데뷔한 이래로 5년간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고 썼다. 글을 보낸 이후 한두 달 뒤에 약속한 대로 원고료를 입금해주는 곳도 있었지만, 하염없이 지급이 늦어지거나 말없이 얼렁뚱땅 주지 않는 곳도 있었다. 편집부에 연락하여 돈을 언제쯤 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은 피차 민망한 일이었다. 민망하고 속상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는 원고 청탁 메일을 엄격하게 읽는 사람이 되었다. 고료가 얼마이며 지급일이 언제인지 명시되어 있지 않으면 청탁을 수락하지 않았다. 매체에서 나에게 마감일을 알리듯 고료 지급일도 정확히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십몇 만 원을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목 빠지게 기다리는 건 서러웠기 때문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답장하곤 했다. ‘제 글을 읽어주시고 반가운 청탁서를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게 고료로 얼마를 주실 것인지 궁금합니다. 언제 주실 것인지도 궁금하고요.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래야 글을 쓸지 말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200자 원고지 1매 기준 만 원 밑으로는 집필 노동을 하지 않습니다. 1매당 최소한 만 원을 받고 일하는 게 제 동료 작업자들과 저 스스로에 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올해부터는 직접 연재를 하기 시작했다.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청탁과 언제 입금될지 모르는 원고료를 기다리다가는 작가로 생계유지하는 미래는 평생 안 올 것 같아서다. ‘일간 이슬아’는 평일에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서 구독자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는 프로젝트다. 한 달에 20편을 보내고 월 구독료 만 원을 받으니까 글 한 편에 500원인 셈이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어묵 한 꼬치보다 저렴한 가격이지만 내 글이 어묵만큼의 기쁨인지 잘 모르겠다. 어묵보다 감동적인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이 달의 구독자를 모집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올리고 구글 설문지를 통해 신청을 받는다. 매일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커다란 일과이지만, 그 외의 잡무를 처리하는 데도 오랜 시간을 쓴다. 구독자를 모집하고 관리하고 각종 문의에 답변하고 수금하고 명단을 정리하고 동료들의 글을 받고 편집하고 입금해주는 등의 일들. 메일함은 마치 나의 업장 같다. 많은 질문과 인사와 항변과 비난과 다정과 제안이 매일매일 도착하는 장소다. 쌓인 메일에 답장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가버리는 날도 있다. 그런 일을 할 때면 스스로가 사무직 종사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한 명에게 만 원씩을 받고 연결되어 있는 이 관계에 관해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구독 신청서에 자신의 일상을 조금 적어주는 이들이 있다. 지난달에 충치 치료를 하느라 돈이 쪼들려서 구독을 한 달 쉬었는데 너무 아쉬웠다는 사람, 여름방학 동안 공장에서 알바한 돈으로 ‘일간 이슬아’의 과월호들을 구입한다는 사람, 혹은 월급이 5일 뒤에 들어오는데 5일만 기다려줄 수 있는지 묻는 사람, 신청해놓고 구독료 입금을 못했는데 글이 도착해서 놀랐다며 지금이라도 서둘러 만 원을 보내겠다고 하는 사람, 이달의 커피 두 잔을 포기하고 내 글을 구독한다는 사람, 그 밖에도 여러 사람의 이야기 적힌 신청서 내역이 매달 쌓여간다. 나는 만 원이라는 돈이 각자에게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새삼 알게 된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수신자들의 하루와 일주일과 한 달을 상상한다. 자정 즈음에 글을 발송해도 3초 만에 나의 글을 열어보는 누군가의 밤과, 숨 막히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며 내가 보낸 메일을 열어보는 누군가의 아침을 생각한다. 나에게 선불로 만 원을 준 이들의 생을. 그들과 나는 재미있는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2018.08)


월간 <채널예스> 2018년 9월호


글 : 이슬아

그림 : 손은경


http://ch.yes24.com/Article/View/36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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