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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릿터] 종강 선물

2019년 8월 25일 업데이트됨






학기가 끝나 가는 계절이다. 민소매 양옆으로 드러난 서로의 어깨와 팔뚝을 한두 번쯤 보고 나면 방학이 코앞이다. 후덥지근한 출근길을 걸어 교무실에 도착하자 까무잡잡한 10대들이 명랑하게 인사한다. 그들은 2002년 무렵에 태어났다. 그 즈음 나는 친구들과 교환 일기장을 돌려 쓰던 초등학교 4학년이자 월드컵 4강까지 진출한 한국 축구팀을 응원하다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려버린 열한 살 어린이였다. 10년 정도는 큰 나이 차가 아니다. 잘하면 그들 사이에 숨어들어 또래 학생인 척할 수도 있을 수도 있겠으나 어쩌다가 우리는 교사와 학생으로 만났다. 내 수업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여섯 명이다. 그들은 학기 초에 자신의 새 이름을 결정했다. 부모가 지은 이름 말고 자기 의지로 지은 이름을 자신에게 주는 관례가 이 학교엔 있다. 나는 성을 빼고 ‘슬아’로 불린다. “슬아, 안녕하세요.”, “보고 싶었어요, 슬아.” 그 좋은 목소리들 속에서 두 시간짜리 수업을 한다. 첫 학기에 내가 설득하려던 건 간단했다. 글쓰기는 힘이 들지만 재미있는 작업이란 것과, 어려워도 잘해 보고 싶을 만큼 근사한 일이란 것. 그걸 믿게 하기 위해 매주 글감을 주고 완성하게 했다. 아이들이 첫 주에 쓴 글과 마지막 주에 쓴 글은 항상 너무도 달라져 있다.


종강을 앞둔 아침마다 내가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 시를 고르는 것이다. 여섯 명의 아이에게 선물할 여섯 편의 시를 말이다. 직접 쓴 시를 선물한다면 좋겠지만 나는 시를 쓸 줄 모르는데다가 한 학기 내내 이미 많은 말을 했으므로 다른 사람이 쓴 시를 고른다. 내 집에는 시집이 마흔일곱 권 있다. 글쓰기 선생님 치고는 적다. 종강 때마다 시를 선물하는 선생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 넓지 않은 시집 책장 앞에서 한 명씩을 생각한다. 아이 하나의 얼굴과 그가 썼던 글들을 기억한 뒤 연결시키고 싶은 시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다음엔 또 다른 아이 하나를 생각한다. 그렇게 여섯 번을 반복한다. 시 여섯 편과 무알콜 샴페인을 가방에 넣고 교실로 간다. 아이들에게 잔을 나눠 주고 그들 뒤를 돌며 샴페인을 따른다. 매주 글 쓰느라 수고한 이들에게 돌리는 축배다. 건배를 한 뒤 나는 한 명 한 명을 호명하며 그들 각자를 위한 시를 읽어 준다. 열여덟 살의 라온에게는 조해주 시인의 시 단골을 선물했다. 매번 처음 본 손님 같은 글을 써 오던 그에게, 그가 주는 우습고 놀라운 낯섦을 언제까지나 즐거워하는 교사로 남을 것을 약속하며, 누구도 함부로 그를 익숙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어 주었다.



(……) 나는 단골이 되고 싶지 않아서// 어떤 날은 안경을 쓰고/ 어떤 날은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어떤 날은 혼자 어떤 날은 둘이// 어떤 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나오는데// 어떻게// 차갑게,/ 맞지요?// 주인은 어느 날 내게 말을 건다// (……) 주인은/ 내가 다니는 회사 맨 꼭대기 층에 지인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혹시 김지현이라고 아나요?// 나는 그런 이름이 너무 많다고 대답한다 (……)



열아홉 살의 마루에게는 김소연 시인의 시 다른 이야기를 선물했다. 누군가의 옆에 나란히 앉아 그간 공유한 기억을 여러 번 만지작거리고 수정하기도 하는 마루를 생각하며 이 시를 읽어 주었다.



처음 만났던 날에 대해 너는 매일매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어떤 용기를 내어 서로 손을 잡았는지 손을 꼭 잡고 혹한의 공원에 앉아 밤을 지샜는지./ (……)그날을 여기에 데려다 놓느라 오늘이 한없이 보류되고 내일이 한없이 도래하지 않는 게 너무나도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그리하여 우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게 좋았다. (……)



열일곱 살의 나사에게는 김영승 시인의 시 반성21을 선물했다. 한심하고 우스운 남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나사의 글과 비슷한 방식으로 웃긴 시였다. 물론 이 우스운 상황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이다. 자기 자신도 포함이라는 걸 언제나 잊지 않는 나사를 기억하며 이 시를 읽어 주었다.



친구들이 나한테 모두 한마디씩 했다. 너는 이제 폐인이라고/ 규영이가 말했다/ 너는 바보가 되었다고/ 준행이가 말했다. 네 얘기를 누가 믿을 수/ 있느냐고 현이가 말했다. 넌 다시/ 할 수 있다고 승기가 말했다/ 모두들 한 일 년 술을 끊으면 혹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술 먹자,/ 눈 온다, 삼용이가 말했다.



열일곱 살의 외솔에게는 이규리 시인의 시 비유법을 선물했다. 하나로 여럿을 사는 일에 대해 외솔이라면 단번에 이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방과 후 날마다 비유법을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그때엔 방과 후가 있었고/ 비유법을 밥처럼 먹던 시절 있었다// 비유는 하나로 여럿을 사는 일이야 (……)



열일곱 살의 비우에게는 육호수 시인의 시 일곱 살의 그림자가 나를 따라오고를 선물했다. 비우의 오래된 슬픔과 그림자와도 닮아 있는 이 시를 천천히 읽어 주었다.



\어떤 꿈에선 내가 정말 일곱 살이었다/ 그런 날엔 일곱 살로 깨어나// 착하게 이불을 개고/ 문법 수업을 듣고/ 국밥을 먹고/ 신문을 보고/ 사랑을 했다// 그러나 일곱 살의 나는/ 시를 못 써서// 의자에 앉아 한꺼번에/ 나이를 먹어야 했다// 꾸역꾸역/ 울음이 쏟아졌다// 눈에서 그림자가 쏟아졌다고/ 일곱 살이 아닌 내가 받아 적었다



열여섯 살의 바론에게는 정한아 시인의 시 이 즐거운 여름을 선물했다. 나는 그가 스물여섯 살에도 글을 쓰고 있으리란 걸 안다. 열여섯 살 때 나도 바론과 같은 표정으로 글쓰기 교사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난 척 같은 건 다 그만두고 싶었어/ 나는 사실은 물이야 아무 데로나 흐르고 싶어/ 어항 같은 것은 도랑에 던져 버리고(산산이 부서지라지)/ 가시 돋친 혀에 찔리지 않고/ 차가운 시선에 얼지 않는/ 응, 나는 파란 물인데, 아무 데로나// 구름으로 떠올랐다 비로 내렸다 그렇지만/ 네 눈가에도 꼭 흐르고 싶은/ 파란 물인데 (……)



시를 모두 나눠 주자 내 손이 비었다. 일곱 개의 잔도 비었다. 아이들은 시가 적힌 종이를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접거나 말아서 가방에 넣었다. 다들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서 일어났다. “우리 여름이 끝난 뒤에 만나자. 잘난 척 같은 건 그만두고 만나자.” 내가 인사했다. “고마웠어요, 슬아.”, “잘 가요, 슬아.” 하고 아이들도 인사했다. 손을 가볍게 흔들고 헤어졌다.



글 : 이슬아



2019년 8월 <릿터>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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