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서평] 책의 속삭임
“이젠 나의 외로움에서 벗어날 시간이 되었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읽을 시간이 되었어.” 정혜윤 <침대와 책> 191p
해가 지고 밤이 되어갈수록 약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 동안 저지른 실수들을 생각하느라, 누군가를 반복해서 미워하느라, 내일의 자신을 염려하느라 진이 다 빠진 이들. 어둠이 내려앉는 창밖을 바라보다 이유 없이 뒤통수가 싸늘해진 이들. 그리운 마음과 뒤쳐진 기분이 익숙한 이들. 그런 사람의 머리맡에 이 책을 놓아두고 싶다. 외로웠던 밤에 내가 나에게 그랬듯 말이다. 침대의 편안한 냄새와 감촉에 둘러싸여 이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치곤 했다. 어딜 펼쳐도 매번 만났다. 내 것보다 더 듣고 싶은 목소리를. 그래서 이런 요청의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더 말해줘. 오늘의 나는 별로인 데다가 약하니까 내 말 말고 네 말을 듣고 싶어. 기분 좋게 잠들 때까지 이야기를 더 들려줘.’ 나는 이불에 푹 파묻혀서 눈으로 책을 읽는다. 하지만 진짜 쓰이고 있는 감각은 청각인 것만 같다. 아주 귀한 말들을 가까이에서 들려주는 사람을 만난 듯하다. 여기 적힌 것들은 ‘읽은 이야기’ 보다도 ‘들은 이야기’로 기억된다. 책은 말한다.
“실패로 끝난 사랑 이야기는 아무리 길어도 다 듣게 돼. 왜냐하면 슬픔에 관한 한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야 (…) 혼자 남은 갈립은 어떻게 외로움을 벗어나 어떻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을까? 갈립은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삶의 비밀을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지. 사람은 오로지 이야기를 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거지. 자기 자신이 되는 유일한 길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임을 알았던 거지.”
이 책은 수많은 다른 책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책이다. 그럼으로써 고유한 자신이 되는 책이다. 자기 슬픔에 매몰되는 자의식 과잉의 새벽 말고 다른 얼굴과 목소리를 맞이하는 깊고 커다란 새벽이 된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어여뻐하지도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지도 않는 마음의 상태다. 책이 해준 말을 나에게도 한 번 더 들려준다. “이젠 나의 외로움에서 벗어날 시간이 되었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읽을 시간이 되었어.” 그러자 나는 더 이상 약하지만은 않다. 내 시선으로 보는 내 모습 말고도 얼마나 보고 들을 것이 무궁무진한지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의 능력으로 외로움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얼굴을 읽다가 잠에 든다.
이슬아 (작가, ‘일간 이슬아’ 발행인)
2019.06.17. 동아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