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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칼럼] 그리움과 디테일


우리는 그리움을 동력으로 글을 쓰기도 한다. 때때로 글쓰기는 사랑하는 것들을 불멸화하려는 시도다. 그런 글은 필연적으로 구체적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대상은 대부분 대체 불가능하다. 쉽게 대체 가능하다면 그리움에 마음 아플 일도 없을 것이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그 대상의 세부정보를 낱낱이 알게 된다. 다른 존재와는 어떤 점이 다른지, 언뜻 흔해 보여도 왜 그 존재가 이 세상에 하나뿐인지를 배워간다. 그 존재는 이제 결코 흔해질 수 없다. 구체적으로 고유해졌으니까. 이 구체적인 고유함을 기억하며 쓰는 글에는 수많은 디테일이 담긴다. 나의 글쓰기 수업을 들으러 온 열아홉 살의 파도라는 아이가 쓴 글도 그랬다. 그가 10년 전의 어느 오후를 회상하며 쓴 글이다. 


“몸이 아파서 학교에 가지 못한 어느 날이었다. 엄마는 방통대에 과제를 제출하러 갔고 잠에서 깬 나는 물을 마시려고 일어났다. 뻐근한 목을 좌우로 비틀며 부엌으로 들어서는데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의 태양빛이 부엌을 비추고 있었다. 찬란하고도 따뜻한 황금빛이 말이다. 부엌 곳곳에 스민 빛과 그림자를 보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집 부엌 예쁘네. 그런데 왜 울컥하지? 눈 아래쪽이 축축해졌다. 잠을 너무 푹 자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식탁을 지나치는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앞으로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직 삼십대였던 엄마와 일곱 살의 나와 다섯 살의 동생이었다. 우리는 오븐 앞에서 쿠키가 구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븐에서 새어나오는 주황빛이 내 코끝을 물들였다. 엄마는 전자파가 나온다며 세 발짝 뒤로 가자고 말했다. 동생은 얼굴에 밀가루를 잔뜩 묻힌 채 나를 끌어당겼다. 나의 분홍색 내복 끄트머리에 밀가루 반죽이 묻었다. 엄마의 등에는 쿠키 세 개를 만들고도 남을 정도의 반죽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나랑 동생은 엄마 몰래 킬킬댔다. 그러다가 내 눈앞의 오븐은 희미해지고 반쯤 열린 수납장이 드러났다. 아무도 없는 집안이 고요했다. 방금까지는 쿠키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는데 지금은 엄마가 아침에 끓인 김치찌개 냄새가 났다. 더 이상 삼십대의 엄마와 일곱 살의 나는 없다. 동생이 만든 똥 모양 쿠키와 2007년의 겨울도 없다. 킬킬대던 웃음도 없다.”


이 글을 읽는 동안 나는 파도가 살던 아파트 부엌에 함께 서있는 것 같았다. 숱한 아파트의 여느 살림집처럼 보여도 정확히 똑같은 집은 단 한 채도 없을 바로 그 집. 가보지 않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었다. 파도가 독자에게 구체적인 장면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파도는 그리움을 설명하는 대신 그리운 이미지를 그저 보여주었다. 좋은 문장은 글자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이미지를 독자의 마음속에 그려낸다. 디테일한 묘사란 부디 이렇게 상상해달라는 요청과도 같다. 문장 속 디테일과 함께 우리는 과거와 미래로 드나든다. 다른 이를 나처럼 느끼기도 하고, 나를 새롭게 다시 보기도 한다.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작품 중 ‘십대 소녀’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일부를 옮겨 적어본다. 

“십대 소녀인 나/ 그 애가 갑자기 지금 내 앞에 나타난다면/ 친한 벗을 대하듯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한테는 분명 낯설고 먼 존재일 텐데.// (…)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그 애는 아무것도 모른다/ 대신 뭔가 더 가치 있는 걸 알고 있는 양 당당하게 군다./ 나는 훨씬 많은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함부로 확신하지 못한다.// 그 애가 내게 시를 보여준다/ (…) 나는 그 시들을 읽고, 또 읽는다./ 흠, 이 작품은 제법인걸,/ 조금만 압축하고/ 몇 군데만 손보면 되겠네./ 나머지는 쓸 만한 게 하나도 없다// (…) 우리의 대화가 자꾸만 끊긴다./ 그 애의 초라한 손목시계 위에서/ 시간은 여전히 싸구려인 데다 불안정하다./ 내 시간은 훨씬 값비싸고, 정확한 데 반해.// 그러다 마침내 그 애가 사라지던 순간,/ 서두르다 그만 목도리를 두고 갔다.// 천연 모직에다/ 줄무늬 패턴,/ 그 애를 위해/ 우리 엄마가 코바늘로 뜬 목도리.// 그걸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심보르스카는 말했다. 자기가 쓰는 시의 유일한 자양분은 그리움이라고. 그리하여 돌아가야만 한다고.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니까. 그렇다면 작가는 어떤 일이 멀어지는 걸 보며 계속 살아가는 사람 아닐까. 멀어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을 기록하며. 그리움을 그리움으로 두며, 하지만 결코 디테일을 잊지 않으며 말이다.


2019.10.21.경향신문

글 : 이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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