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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칼럼] 그날 입은 옷



어느 날 나는 ‘그날 입은 옷’이라는 글감을 칠판에 적었다. 내가 혹은 누군가가 어느 날 입고 있던 옷을 기억하며 글을 써보자는 제안이었다. 


이따금씩 우리는 무엇을 입었는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을 겪는다. 그 하루는 왜 선명하게 남는가. 누구와 무엇을 경험했기에 그날의 옷차림까지 외우고 있는가. 이 주제로 모은 수십 편의 글 중에서 너무 서투른 옷차림이라 유독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스물다섯 살의 도혜의 이야기다.


아직 한 번도 알바를 해본 적 없는 아이가 있었다. 열아홉 살의 도혜였다. 도혜는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처럼 부모님께 용돈을 받으며 학교와 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그의 친구 윤이는 달랐다. 고등학생 신분으로도 이미 여러 알바를 해본 아이였다. 그들의 동네가 관광지로 뜨기 시작하여 곳곳에 알바 자리가 생겨나던 2014년 무렵이었다. 방과 후에 윤이는 다양한 식당에서 서빙 일을 했다. 자신의 용돈을 직접 벌고 전기료와 난방비도 직접 내야 하는 사정이 윤이에겐 있었다. 도혜의 반에서 그런 친구는 윤이뿐이었다. 쉬는 날이면 윤이는 자신의 가난한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여 소박한 파티를 하곤 했다. 도혜는 자신이 모르는 슬픔과 낭만을 아는 듯한 윤이의 모습을 남몰래 동경했다. 당시 윤이는 갈빗집 알바와 중국집 알바를 병행했는데 하루는 갈빗집 알바가 길어지는 바람에 중국집 알바 대타가 필요해졌다. 급하게 대타를 찾느라 난처해진 윤이에게 도혜는 용기를 내어 자신이 대신 출근하겠다고 자처했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윤이보다 어리숙한 자기 모습을 생각하다가 이내 자신이 없어지고 말았다. 도혜는 자신에게 부모가 있다는 것과 그들로부터 별 어려움 없이 용돈을 받는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그런 게 부끄러운 적은 난생처음이었다. 내게 없는 것 말고 내게 있는 것이 부끄러운 경험 말이다. 염치 때문에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다. 도혜는 가장 아끼는 보라색 맨투맨 티를 입고 윤이가 일하는 중국집 문을 열어젖혔다. 말끔하고 호감 가는 일꾼으로 보이기 위해 신경 써서 골라 입은 옷이었다. 그걸 입고 몇 시간을 일했다. 퇴근할 무렵엔 옷소매에 짜장면 소스와 짬뽕 국물이 잔뜩 튀어 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친구의 대타로 뛰는 첫 알바 날에 가장 아끼는 티셔츠를 골라 입는 도혜의 마음을 우리는 그려볼 수 있다. 윤이 덕분에 도혜는 처음으로 자신의 ‘있음’이 부끄러워졌다. 결여된 것들을 통해 윤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일찌감치 배웠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신형철 평론가의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적힌 문장에 따르면 욕망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해진다. 도혜가 윤이를 좋아하다가 자신이 무엇에 서툰지 알아가게 되는 과정처럼 말이다. 어떤 사랑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기보다 내 안의 결여를 인지하도록 이끈다. 


열아홉 살의 도혜는 스스로가 미덥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윤이의 일터에서 일한다. 이렇게 부족한 내가 너처럼 빛나는 사람의 자리를 반이라도 메꿀 수 있다면 기꺼이 시간과 몸과 마음을 쓰겠다는 응답과도 같다. 스물다섯 살 도혜의 글은 이렇게 끝난다.


“새로운 일이 시작될 때마다 나는 자연스레 윤이를 떠올린다. 윤이야, 너는 다 알고 있었니. 무엇을 더 알고 있니. 이다음은 무엇이니. 이젠 보이지 않는 윤이의 뒷모습을 나는 아직도 바쁘게 쫓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내가 나여서 그 자체로 너무 충분하고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타인의 사랑에 굳이 응답하지 않아도 평안할 것이다. 사랑은 상대에게 없는 것과 나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면서 시작되기도 하니까. 가장 아끼는 맨투맨 티를 입고 중국집 문을 열어젖히며 윤이에게 온몸으로 응답하는 도혜의 모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사랑과 우정이 해내는 일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020.02.24.경향신문

글 : 이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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