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서평] 작은 것들의 신 - 아룬다티 로이
최종 수정일: 2019년 3월 13일

감각으로 남는 소설
이 소설을 완독할 때마다 낮잠을 잤다. 나를 뒤흔드는 사랑이 밤새 머물다 떠난 아침처럼 소진된 채로 잠이 들었다. 꿈의 배경은 아예메넴이었다. 인도의 덥고 음울한 마을. 농익은 과일과 풀벌레의 마을. 이 소설이 펼쳐지는 마을. 자신들을 합쳐서 ‘나’라고 생각하는 이란성 쌍둥이와, 가늘고 강인한 곱슬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여자와, 팔이 하나뿐인 ‘작은 것들의 신’이 살던 마을. 책 속의 그 마을이 꿈에서도 나왔다. 축축하고 매혹적이고 아주 많이 안타까운 꿈이었다.
깨어날 즈음에도 소설을 생각했다. 쌍둥이가 내 옆에 있었다면, 서로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도 읽어낼 수 있는 어린 그들이라면 분명 날 깨우기보다는 조심스레 잠을 방해하는 편을 택할 것이다. 꿈꾸는 사람을 갑자기 깨우면 심장마비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믿으므로. 서랍을 열고 목청을 가다듬고 괜히 신발도 정돈하며 내가 꿈의 표면 아래에서 쉬다 나올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쌍둥이 중 하나가 오후 악몽을 꾸었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텍스트로도 남지만 꼭 잊지 못할 꿈을 꾼 듯한 감각으로도 남는 소설이다. 몸에 관한 문장이 아주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종이 위에 적힌 육체의 질감과 냄새와 모양과 탄성이 꼭 내 것인 것처럼 읽힌다. 작고 사소한 부위에 깃든 신을 떠올리게끔 한다. 그럼 내 몸도 남의 몸도 서글프도록 귀하게 여겨진다.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무언가를 그리고 누군가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게 된다. 아룬다티 로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을 닮아가고 싶어서 서재의 가장 잘 보이는 책꽂이에는 언제나 이 소설을 꽂아둔다. (2018.12.26)
글 :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